<인플레이션 우주론>

우주의 구조와 그 시간적 발전을 연구하는 학문을 우주론이라고 불리운다. 이것이 신화나 철학이 아이고 하나의 자연과학이 된 것은 인류 사상 드물게 천재인 아인슈타인에 의해 시공의 물리학이나 할 수 있는 일반상대성 이론이 완성된 때, 즉 지금으로 부터 겨우70년 가량 전의 일이다. 아인슈타인 이전에서는 공간이란 단순히 물질을 넣어 두는 '용기'이고 시간이란 절대 무한의 과거에서 무한의 미래를 향하여 흐르는 것으로서, 공간이 물질의 존재에 의해 굽거나 또 시간의 진행이 물질의 운동에 의해 변화한다는 것 등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현재, 가장 과학적인 우주론은 빅뱅 우주론이라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두 관측 사실(허블의 우주팽창의 법칙과 3K의 배경복사의 존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이 이론에서는 우리 우주는 지금 부터150억년전에 뜨거운 불덩이로서 탄생하고 것이 팽창, 냉각하는 과정에서 은하와 별이 태어나며 현재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빅뱅 우주의 역사를 어느 시기까지 소급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에서도 태곳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차츰 애매모호하게 된다. 하물며 직접 발굴 조사도 할 수 없는 우주의 과거에 관한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이 지구상에서 가장 미시의 물질 세계를 지배하는 소립자를 다룰 수 있다. 빅뱅 우주는 과거로 소급하면 할수록 온도가 높아진다. 우주가 처음으로 태어났을 그 무렵에는 원자나 원자핵 등의 모든 물질은 분해되어 소립자의 가스로 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우주가 처음으로 생겼을 때의 우주를 알고자 하면, 당연히 소립자의 성질과 법칙을 알아야 한다.

최근 10년사이에 소립자 물리학은 혁명이 일어났다고 할 만큼 급속히 진전하였다. 그것은 게이지 이론(gauge theory)이라 불리는 이론이 크게 성공함에 따라 힘의 통일 이론이 눈부신 진보를 달성한 일이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물질 세계에는 중력, 약한 상호작용, 전자기력 그리고 강한 상호 작용의 네 기본적인 '힘'이 존재하고 있다. 어떻게 힘의 세기와 성질, 도달거리가 다른 힘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일까. 이들 힘을 독립된 힘으로서가 아닌 하나의 원리, 하나의 이론으로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아인슈타인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이들 힘을 통일적으로 이해하려고 전자기력과 중력의 통일 이론을 시도 하였다. 결국 그것은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 이래 통일 이론은 물리학자의 꿈이 되었다. 그것이 최근에 게이지 이론이라 불리는 것으로 그 꿈이 실현될 것처럼 보였다. 약한 상호작용과 전자기력의 둘을 통일하려는 와인버그, 살람의 이론이 확고한 것이 되었다. 그 이론이 예언한 세입자가 CERN(유럽 소립자연구소)의 구비아등의 그룹에 의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에 강한 힘까지도 포함한 이론은 대통일 이론(GUT;Grand Unified Theory), 더욱이 중력까지도 포함한 모든 힘의 통일 이론은 초대통일 이론(Super GUT)이라 불리고 있는데, 이들이 확립될 날도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소개하는 인플레이션 우주(Inflation Universe)란 이 통일 이론에 입각한 우주 탄생 때의 우주에 대한 시나리오이다. 그 당시 단순한 빅뱅우주 이론으로는 예상도 할 수 없었던 사건이 인플레이션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우주론의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됨과 동시에 우주 탄생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실로 컸다.

**힘의 분리**

현재의 물리학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온도는 플랑크 온도라 불리는데 그 값은 10의 32승K이다. 이것은 빅뱅우주에서는 우주탄생후 10의 44승분의 1초라는 시각에서의 온도인데, 거기서는 시공(시간과 공간)그 자체가 양자론적으로 운동하고 있다. 결국, 블랙홀 등이 출연했다, 소멸했다 하는 것이다. 또 이 시기에는 모든 물질이 녹아 소립자 가스로 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사이에 작용하는 네 힘도 '서로 융합하여'하나의 힘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주가 팽창하여 온도가 플랑크 온도 보다 낮아지면서 물질사이에 작용하고 있던 힘도 하나였던 것에서 중력이 갈라져 나간다. 더욱이 온도가 10의 28승K가지 내려가면 더욱 새로운 갈라짐, 즉GUT상전이가 일어나고, 강한 힘이 탄생하는 것이다. 우주의 온도가 10의 16승K까지 내려갔을 때 마지막 갈라짐이 일어나 약한 힘과 전자기력이 탄생하게 되는데 거기서 비로소 현재 알려져 있는 네 힘이 다 갖춰지게 된다. 생물의 진화와 마찬가지로 물질사이에 작용하는 힘도 우주 온도의 강하와 함께 갈라짐을 일으키고 '진화'하였다는 것을 통일 이론은 시사하고 있다. 이들 힘의 갈라짐 이외에도 우주론에서 중요한 현상이 일어났다. GUT상전이에서는 우주에서 최초의 물질이 탄생한다. GUT상전이 이전은 쿼크(quark;강입자 족에 속하는 소립자군의 구성요소)등은 질량이 0인 X입자라 불리는 게이지 입자에 의해 전자나 중성미자(neutrino)등의 렙톤(lepton;경입자)과 교체하고 있다. 그런데 상전이 후 X입자는 질량을 가지게 되고, 온도의 강하에 따라 이것이 붕괴하여 쿼크가 생성된다. 이때 쿼크나 렙톤이 물질로서 구별할 수 있게 된다. 또 GUT상전이에서는 모노폴(monopole), 즉 가지 단극이 생성된다. 모노폴이란 N극 또는 S극만의 자하를 갖춘 소립자로서 우주가 급냉했을때 진공의 변형으로서 형성되는 상전이의 화석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82년 2월 14일에 모노폴의 발견이 보고되었는데 오직 이 한 건뿐이다. 만일 이 모노폴의 존재가 확정된다면 힘의 통일 이론, 힘의 진화가 증명되는 셈이다. 네 힘의 가라짐이 완료되고 10의 12승K가 되면 쿼크가결합하고 양성자와 중성자가 형성된다. 더욱 온도가 내려감에 따라 원자핵이 생기고, 원자가 형성되고, 은하와 별이 탄생하며, 그리고 생명이 태어나게 된다. 또 온도의 강하로 수반되는 상전이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힘의 가라짐과 우주의 팽창**

그렇다면 왜 힘은 온도의 강하에 따라 갈라지게 되는가. 그것은 온도가 높을 경우에는 하나의 힘으로 존재하는 쪽이 우주의 상태로서 안정하지만 어떤 온도(임계온도)이하가 되면 두 힘으로 되는 것이 안정하기 때문이다. 물질의 상태가 온도의 변화로 변하는 현상, 이를테면 온도가 100도를 넘어서 끊으면 물이 수증기가 되거나 또 0도 이하가 되면 얼음이 되는 현상은 상전이라 한다. 힘의 진화도 우주의 물질 상태에서 상전이에 의한다. 우주의 온도가 임계 온도(critical temperature)까지 내려갔을 때, 상전이가 일어나고 힘이 갈라진다고 생각하였는데 현실에서 상전이는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법이다. 이를테면 불순물이 함유되지 않은 순수한 물을 조용히 가열 했을 때 100도를 지나도 즉시에 끊지 않으며 0도까지 식혀도 즉시 얼음이 되는 일은 없다. 실제로는 영하 수 도가 되고서야 비로소 얼음이 된다. 우주의 상전이에서도 이와 같은 과냉각이 일어 난다. 여기서는 강한 힘이 갈라지는 상전이에서 과냉각이 일어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겠다. 과냉각이 일어나면 우주의 온도가 10의 28승K보다 낮아져도 상전이가 진행되지 않으므로 우주는 에너지가 높은 불안정한 상태로 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우주가 이와 같이 고에너지 상태로 머물고 있다는 것은, 우주의 공간 자신 사이에 강한 척력(repulsive force)이 작용한다는 것이 된다. 따라서 우주는 과냉각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은 이 척력으로 보통으로의 빅뱅우주의 팽창속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급격한 팽창을 일으키고 만다. 과냉각이 겨우 10의 34승분의 1초가량 계속되기만 해도 우주의 크기는 일거에 10의 50승배나 커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주가 급격히 팽창하는 일을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고 한다. 우주의 인플레이션은 물론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불안정한 상태로 옮겨지고, 상전이가 끝남과 동시에 과냉각은 끝나나다. 그리고 이 상전이가 끝났을 때에 물이 얼음이 될 때에 방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량의 숨은 열(latent heat)을 방출하므로 우주는 다시 고열의 불덩이로 돌아간다. 인플레이션이 끝난 다음의 우주 진화는 표준의 빅뱅 우주와 다른 점이 없다.

**표준 빅뱅 우주론에서 인플레이션의 의미**

1.지평선 문제

표준 빅뱅이론은 그 성공에도 불구하고 실은 중대한 결함이 둘 있다. 그 하나가 지평선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우주 탄생에서 150억년이 지난 현재우주의 공간은 거의 진공에 가까워서 빛이나 전파는 물질에 의해 산란되는 일 없이 직진할 수 있다. 우리들이 먼 곳에 있는 은하와 별들을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멀리까지 우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일까. 우주에 있어서 먼 곳을 본다는 것은 거기서 빛이 몇십 억 년이나 걸려서 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과거의 우주 모습을 보는 것이 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우주는 3K의 배경복사가 보여주는 우주이다. 우주 초기에는 물질의 밀도와 온도가 높고 빛은 물질에 의해 산란되므로 직진할 수가 없다. 우주가 빛이나 전파에 대하여 투명해진 것은 팽창으로 물질의 밀도가 내리는 10만년 가량 지날 무렵이다. 이를'우주의 말게 갬'이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주가 맑게 개었을 무렵의 '지평선'에 대해 생각해보자. 지평선이란 각각의 우주 시가에 살고 있던 사람이 빛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의 경계를 말한다. 맑게 갠 무렵의 우주는 아직 10만년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빛은 10만 광년의 거리밖에 달리고 있지 않다. 플랑크 시각에서의 시공이 양자론적으로 요동하고 있다는 것 등에서 초기 우주는 상당히 요철이 심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지평선 안의 영역이라면, 물질을 뒤섞이게 하는 어떠한 과정이 일어나면, 한결같은 요철이 없는 상태로서 '정지'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평선을 넘는 큰 스케일에서는 '정지'는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은 빛보다도 빠른 속도로 물질을 뒤섞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게 갠 무렵의 우주는 지평선 거리를 넘는 곳에서는 요철이 심했다고 추측된다. 그런데 전파망원경으로 3K의 우주배경복사를 조사하면, 이 무렵의 우주는 거의 완벽하다고 생각될 만큼 요철이 없는 상태,즉 '정지'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매우 큰 스케일로 우주가 한결같은 상태가 되어 버린 모순을 '우주의 지평선 문제'라한다.

이 지평선 문제는 표준 빅뱅이론의 모순이다. 인플레이션 우주론은 이 문제를 실로 간명하게 해결하였다. 인플레이션 우주가 시작되기 전의 우주에서 지평선 거리보다도 작고, 그 안에서는 뒤섞임에 의해 요철이 없어지고 만 한결 같은 영역을 생각하기로 하자.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면 이 영역은 우주의 급격한 팽창으로 10의 34승분의 1초라는 짧은 시간에 10의 50배로 확대되고 만다. 우리가 현재 관측하고 있는 한결같은 우주란 실은 이 영역의 안쪽이다. 인플레이션 우주에서는 지평선도 급격히 확대되므로 표준빅뱅이론 우주에서의 그것과 비교하면 몇십 자리 수의 배수가 되어 지평선 문제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2.평탄성 문제

표준 빅뱅우주 이론의 또 하나의 문제는 '평탄성 문제'이다. 우주의 관측에서 우주의 곡률(carvature), 즉 공간의 굽은 정도는 전혀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작다는 것이 알려졌다. 우리의 우주는 극히 평탄하고 유클리드적이다. '평탄성 문제'란 어떻게 해서 이렇게 평탄한 우주가 형성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현재의 우주가 평탄하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우주의 팽창을 기술하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서 보면, 평탄한 상태도 100억 광년 이상의 크기까지 우주를 팽창시킨다는 것은 표준빅뱅이론에서는 거의 불가능한일이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에 우주 탄생의 순간에 가까운 플랑크 시각(10의 -44승초), 이 시각에서의 우주의 크기, 에너지밀도를 초기치로서 대입하여 우주의 팽창을 계산해 보자. 만일 초기치로서 부여하는 에너지 밀도에 10의 120분의 1가량의 근소한 오차가 있으면 우주는 순식간에 굽어지고 말던가, 팽창에서 수축으로 돌아서자 깨지고 만다. 실제로 플랑크시각에서는 양자론 적인 운동으로 우주의 에너지 밀도는 흔들거리게 되고 따라서 정확한 수치를 대입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표준 빅뱅우주 이론의 곤란도 인플레이션 우주 모델에서는 일시에 해결 할 수가 있다. 우주 팽창의 시작이 약간 불철저해도 우주가 수축하여 깨져버리기 전에 인플레이션이 시작하기만 하면 공간에 작용하는 척력으로 우주는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급격한 팽창을 일으킨다. 이를테면 굽은 공간이라 해도 그것이 관측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손에 쥔 공의 면이 굽어있다는 것은 알아도, 그것을 지구만큼의 크기로 팽창시키면 가까이에 있는 인간에게는 평탄한 한 평면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다는 것과 같다.

**우주의 창세를 시사하는 인플레이션 우주**

통일 이론에서 출발하여 결론에 도달한 인플레이션 우주 이론은 표준 빅뱅 우주 이론의 중대한 곤란을 일시에 해결을 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단순히 일관된 우주 모델을 만들어 낸다는 것만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인 의미를 갖추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이제까지 생각한 GUT상전이 때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플랑크 시각에서 중력이 갈라지는 상전이 때에 일어나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이 시대에서는 시공 자신이 양자론적 요동으로 부글부글 끊어 혼돈 상태에 있다. 여기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양자론적 요동은 각각 급격히 팽창하고 독립된 우주로 성장할 수 있다. 우리 우주도 이처럼 양자론적 시공의 요동으로 만들어진 것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호킹과 태프트 대학의 비렝킹은 더욱 이 생각을 진전시켜 '부로부터의 우주 창세'하는 생각을 발표하고 있다. 이제는 플랑크 시각에서의 양자론적 요동 등이라는 생각이 필요 없고, '무'로 부터의 양자론적 요동에 의한 상전이로 작은 시공이 태어나고 그것이 인플레이션에 의해 제구실을 할 수 있는 큰 우주로 성장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주 창세는 우주론, 그리고 물리학의 근원적 문제인데, 이것이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우주의 급격한 팽창의 메커니즘 뿐만 아니라, 우주 창세에도 큰 시사를 던져 주고 있다.